<< 이 가을,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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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경녀 댓글 2건 조회 667회 작성일 01-10-11 11:10본문
* * * * * * *
천성이 게을러 웬만하면 눈 질끈 감고 못 본 척 넘어가기 일쑤인데,
도저히 더는 못 본 척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신 해줄 사람도 없고, 결국은 내 차지임이 뻔한 일임에도
왜 그렇게 하기 싫고 꾀만 나는지...
다정한 인사말보다는 못된 욕부터 배우는 이방인처럼,
해놔 본들 겉으로는 했단 티도 나지 않을 일이라
꼼꼼히 정리하기 보다 쿡 쳐박아 놓고 문 탁 닫아버리는
훨씬 빠르고 쉬운 방법이 있다는 걸 더 먼저 터득해버린 탓이겠지요.
그러나 두 아이가 대중없이 열고 닫을 때마다
계절이 뒤범벅된 내장을 드러내고
틈에 낀 양말짝 따위가 혓바닥처럼 늘어져 있는 꼴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야 있겠어...] 하며
지난 여름부터 미루고 미루던 서랍정리에 하루종일 매달려 있었습니다.
일단 발동이 걸려 시작만 하면 언제 하기 싫다고 했더냐는 듯
몰입을 하는 것도 참 말리기 어려운 제 성격입니다.
계절이 지난 옷... 크기가 맞지 않는 옷...
아이들 서랍에선 이 두 종류 옷만 추려 내면 되었지만,
제 서랍 속에선 계절이나 크기와 관계 없이
입을 만은 해도 유행이 지나 어딘가 어색한 옷...
사놓고 공연한 변덕이 들어 입지 않는 옷...
낡고 바랬어도 이런저런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정리를 할 때마다 갈등을 겪게 하는 옷까지... 정말 솔찮이 많더군요.
아이들의 옷가지는 고치를 박차고 나온 나비의 아름다운 변신과
성장의 증거인 허물처럼 자못 대견하고 흐뭇하고 예뻐 보였지만...
이미 성장을 멈춘 지 오래 되었으면서도
밀어둔 두 아이들 옷보다 키 높이고, 부피 늘이고 있는 제 옷가지들은...
마치, 세상살이의 잡다한 번민과 욕망의 찌꺼기인 듯
흉물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정리하고 추려 내고 버려야 할 옷이 많다는 것은
지금 제 삶 역시, 벗어 버려도 좋은 세속의 수많은 업을
덧입고 껴입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했구요...
그다지 큰 힘이 드는 것도,
또한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니면서 엄두 내기 어렵고,
손을 털고 일어서는 순간까지 [ 버릴까, 말까 ] 단순한 갈등을
끊임없이 강요하며, 시간은 시간대로 뭉턱뭉턱 잡아먹는 그 일.
입 꾹 다물고 [ 잔류 ] 와 [ 폐기 ] 를 반복하며
문득 제가, 옷 아닌 제 생각의 묵은 서랍들을 하나하나 비우고
다시 정돈해가며 채우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념에 한동안 사로잡히기도 해가면서...
서쪽으로 난 작은 부엌 창을 소리 없이 열고
초가을 붉디붉은 해가 뉘엿뉘엿 긴 발을 들이밀 때쯤에야
서랍 속에 뒤섞여 있던 四季를 얌전히 분리하고
끼리끼리 모아 앉힐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차곡차곡 제 자리를 찾은 옷가지들의
[ 새 옷 ] 인 척 천연덕스러운 표정이나
다소 넉넉해진 서랍을 들여다보는 것이 참 즐겁고 뿌듯했지만,
따로 빼어둔 옷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렇게 흔연하지만은 않았습니다.
[ 정리 ] 되어 [ 퇴출 ] 당한 옷들은
비록 처음보다 반듯하고 잘 개켜져 있음에도 왠지 더 초라해 보여,
대오에서 이탈한 자들의 꿈과 희망이란 것은
암만 포장을 잘 한다 해도 저리 외롭고 서글퍼 보이리란 사실을
은연 중에 시사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는지요.
어쨌거나 서랍 속을 벗어나지 못해 버글대던 여름을 미련없이 덜어내고,
서늘한 코발트빛 가을 하늘 한 귀퉁이 쓱 베어다 채우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허나... 이렇게 잘 정돈된 서랍들을 보자
말릴 틈도 없이 들이닥친 [ 떠나고 싶다 ] 란 충동 때문에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온 집안을 서성대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집을 비우기 전엔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싶어서
가능하면 청소를 해두고 나가던 습관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생활이 제게 아무런 목적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홀가분한 여행의 사치를 선선히 허락해줄 날만
기다려 보자고 혼자 다독다독 달래는 수밖에요...
그때가 오면...
[ 여행할 땐 고무신이 편하지... ] 라며
홀홀 여름 끝자락을 대동한 채 저 혼자 가을빛으로 물들어버린
어느 벗의 고단한 발에 신길 검정 고무신 한 켤레 가슴에 고이 품고,
그 자취를 더듬어 저도 떠나볼 작정입니다...
그대...
가을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제가 늘 그대의 안부를 궁금해 하듯
그대 역시 저의 이 가을을 말 없이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계시겠지요.
[ 한 개의 사과 속에 든 씨앗의 수는 셀 수 있지만
한 개의 씨앗 속에 든 사과의 수는 셀 수 없다 ] 던 말의
그 깊고 향기로운 의미를,
한 바구니 가득 그대의 가을에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 Let me see --------------------
천성이 게을러 웬만하면 눈 질끈 감고 못 본 척 넘어가기 일쑤인데,
도저히 더는 못 본 척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신 해줄 사람도 없고, 결국은 내 차지임이 뻔한 일임에도
왜 그렇게 하기 싫고 꾀만 나는지...
다정한 인사말보다는 못된 욕부터 배우는 이방인처럼,
해놔 본들 겉으로는 했단 티도 나지 않을 일이라
꼼꼼히 정리하기 보다 쿡 쳐박아 놓고 문 탁 닫아버리는
훨씬 빠르고 쉬운 방법이 있다는 걸 더 먼저 터득해버린 탓이겠지요.
그러나 두 아이가 대중없이 열고 닫을 때마다
계절이 뒤범벅된 내장을 드러내고
틈에 낀 양말짝 따위가 혓바닥처럼 늘어져 있는 꼴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야 있겠어...] 하며
지난 여름부터 미루고 미루던 서랍정리에 하루종일 매달려 있었습니다.
일단 발동이 걸려 시작만 하면 언제 하기 싫다고 했더냐는 듯
몰입을 하는 것도 참 말리기 어려운 제 성격입니다.
계절이 지난 옷... 크기가 맞지 않는 옷...
아이들 서랍에선 이 두 종류 옷만 추려 내면 되었지만,
제 서랍 속에선 계절이나 크기와 관계 없이
입을 만은 해도 유행이 지나 어딘가 어색한 옷...
사놓고 공연한 변덕이 들어 입지 않는 옷...
낡고 바랬어도 이런저런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정리를 할 때마다 갈등을 겪게 하는 옷까지... 정말 솔찮이 많더군요.
아이들의 옷가지는 고치를 박차고 나온 나비의 아름다운 변신과
성장의 증거인 허물처럼 자못 대견하고 흐뭇하고 예뻐 보였지만...
이미 성장을 멈춘 지 오래 되었으면서도
밀어둔 두 아이들 옷보다 키 높이고, 부피 늘이고 있는 제 옷가지들은...
마치, 세상살이의 잡다한 번민과 욕망의 찌꺼기인 듯
흉물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정리하고 추려 내고 버려야 할 옷이 많다는 것은
지금 제 삶 역시, 벗어 버려도 좋은 세속의 수많은 업을
덧입고 껴입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했구요...
그다지 큰 힘이 드는 것도,
또한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니면서 엄두 내기 어렵고,
손을 털고 일어서는 순간까지 [ 버릴까, 말까 ] 단순한 갈등을
끊임없이 강요하며, 시간은 시간대로 뭉턱뭉턱 잡아먹는 그 일.
입 꾹 다물고 [ 잔류 ] 와 [ 폐기 ] 를 반복하며
문득 제가, 옷 아닌 제 생각의 묵은 서랍들을 하나하나 비우고
다시 정돈해가며 채우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념에 한동안 사로잡히기도 해가면서...
서쪽으로 난 작은 부엌 창을 소리 없이 열고
초가을 붉디붉은 해가 뉘엿뉘엿 긴 발을 들이밀 때쯤에야
서랍 속에 뒤섞여 있던 四季를 얌전히 분리하고
끼리끼리 모아 앉힐 수 있었습니다.
모처럼 차곡차곡 제 자리를 찾은 옷가지들의
[ 새 옷 ] 인 척 천연덕스러운 표정이나
다소 넉넉해진 서랍을 들여다보는 것이 참 즐겁고 뿌듯했지만,
따로 빼어둔 옷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렇게 흔연하지만은 않았습니다.
[ 정리 ] 되어 [ 퇴출 ] 당한 옷들은
비록 처음보다 반듯하고 잘 개켜져 있음에도 왠지 더 초라해 보여,
대오에서 이탈한 자들의 꿈과 희망이란 것은
암만 포장을 잘 한다 해도 저리 외롭고 서글퍼 보이리란 사실을
은연 중에 시사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는지요.
어쨌거나 서랍 속을 벗어나지 못해 버글대던 여름을 미련없이 덜어내고,
서늘한 코발트빛 가을 하늘 한 귀퉁이 쓱 베어다 채우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허나... 이렇게 잘 정돈된 서랍들을 보자
말릴 틈도 없이 들이닥친 [ 떠나고 싶다 ] 란 충동 때문에
한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온 집안을 서성대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집을 비우기 전엔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싶어서
가능하면 청소를 해두고 나가던 습관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생활이 제게 아무런 목적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홀가분한 여행의 사치를 선선히 허락해줄 날만
기다려 보자고 혼자 다독다독 달래는 수밖에요...
그때가 오면...
[ 여행할 땐 고무신이 편하지... ] 라며
홀홀 여름 끝자락을 대동한 채 저 혼자 가을빛으로 물들어버린
어느 벗의 고단한 발에 신길 검정 고무신 한 켤레 가슴에 고이 품고,
그 자취를 더듬어 저도 떠나볼 작정입니다...
그대...
가을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제가 늘 그대의 안부를 궁금해 하듯
그대 역시 저의 이 가을을 말 없이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계시겠지요.
[ 한 개의 사과 속에 든 씨앗의 수는 셀 수 있지만
한 개의 씨앗 속에 든 사과의 수는 셀 수 없다 ] 던 말의
그 깊고 향기로운 의미를,
한 바구니 가득 그대의 가을에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 Let me s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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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은님의 댓글
이석은 작성일오늘도 좋은 결과 있길 희망합니다^^
신명진님의 댓글
신명진 작성일체전에 참여하신 여러분 축하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