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행 중 오토복에서 나와수리를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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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찬희 댓글 4건 조회 9,753회 작성일 15-09-01 09:01본문
안녕하세요. 늘 눈팅만 하다가 제 경험이 여러분들께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글을 올려봅니다.
여기 게시판에도 정품이라는 말이 올라와 있던데.
정말로 정품 중요합니다.
저는 사업 때문에 해외를 자주 다니는 편입니다.
해외여행을 다니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다른 나라를 입국할 때 보안 검색대를 거치다보면 의족이나 의수 때문에 삐익~삑..좀 당활도 하고 놀라는경우가 많으시죠. 그래도 다 그려러니 하고..입국합니다. 특히 미국은 더 철저해서 허리벨트 빼고 신고 있던 신발 벗고, 윗옷 벗고.. 특히 저 같은 의족을 착용한 사람은 조용한 곳으로 가서 바지도 내려보구. 처음엔 화가 많이 났었는 데, 한국을 떠나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하는 것. 그 나라의 보안이 그런걸..어쩌겠습니까.
괜시리 한국사람 특유의 성질 머리로 뭐라뭐라 했다가 입국허가가 나지 않으면 되돌아 가야하고 결국은 나만 손해인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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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두가 길었습니다.
저는 가족들과 그렇게 일도 볼 겸 해서 미국에 도착을 해서 누나가 있는 LA로 갔다가 유타주로해서 마이에미를 거쳐 로스캐롤라이나. 뉴욕으로 그리고 다시 시카코로. 그렇게 한 16일을 다니는데, 16일째 되던 날. 의족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걸을 때 중심이 잘 안 잡히고 발을 내 딛을 때도 불알하고 흔들흔들..뭔가 크게 고장이 난 것 같은데, 이러다 크게 넘어져 다칠 것 같은 생각에 응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서 여행객이라는것도 알고, 연결을 해줘서 다음날 다시 병원을 방문. 미국 오토복에서 직원이 나와수리를 해줬습니다. 소켓이라는 부분과 다리 연결된 부분에 4개중 2개의 나사가 부러져 있있더라구요. 그런데요 더 좋았던 것은 돈을 안 받았다는 것. 들어간 돈은 처음에만100$ 정도. 왜 그런가 했더니, 오톡복 제품에는 소소한 것 까지 다 넘버가 있더라구요. 확인 해보고 다 정품이라고 하면서, 잘 착용하고 여행도 잘하고 한국에 돌아가라고 까지 해주네요. 와..이렇게 고마울 때가. 우리나라 사람들 같았으면 외국인이라고 언제다시 볼꺼냐 하는 마음에 더 돈을 뜯어 내거나 바가지를 씌웠을 텐데, 장애인의 먼저 걱정해 주는 서비스 정신에 감탄을 하게됐네요.
사실 처음 의족을 한국서 할 때, 8백 만원 돈 하는 의족 값이 뭐가 이렇게 비싸 구성 품이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비싸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데, 정말 이번 여행을 통해 제대로 된 의족을 했구나. 정말 돈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구나하는 생각에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가면 절단장애인협회 회원님들께 꼭 알려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올려 봅니다.
남은 보름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가족들과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나 살 만큼의 연금은 받다보니 내 몸 자체가 장애로 힘드니까 귀찮기도 하고 직업은 구할 생각도 못하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 탓하며 술로 허송세월을 보냈는데, 복덩어리 와이프를 만나고 내 인생이 바뀌었네요. 처음엔 성격도 맞지 않고,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나를 어린아이 다루듯 가르치려드는 것 같아. 나 이대로 살 거야 내 버려둬. 죽던 살던 내 인생이야. 하며 엄청 많이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 지금 생각하면 정말 와이프를 잘 얻었구나. 와이프가 시키는 대로 술도 끈고 담배도 끈고 직업학교에 등록도 하고. 직업 기술도 배우고 해서 조그마하게 사업을 시작하다보니 한해 두해 조금씩 사업이 커졌네요. 그동안 나를 쭈욱 봐온 분들 아주 가까온 우리부모님 누님들 부터도 아이고 저놈 저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어. 죽을 때까지 술독에 빠져 살다 가겠지 했는 데. 너 와이프한테 평생 잘해. 하시네요. 사실 결혼할 때는 돈도 없어 신혼여행도 못가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가자 했는 데, 우리 아이도 복덩이인지, 어느 순간부터 돈이 굴러 들어오네요. 그렇게 10년. 사업을 하다보니 직원들도 50여명. 나름 내가 하는 이쪽분야에선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올해로 아이가 11살. 중학교에 들어가면 앞으로 여행뿐 아니라 아이랑 좋은 추억을 갖기 힘들 것 같아서 함께 한 여행이 우리가족에겐 잊지 못할 여행이 되었네요. 이때의 소중한 여행담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들거나 할 때, 가족의 힘으로 위로가 되겠죠.
전 지금 아이에게도 자랑스런 아빠가 되었고. 와이프에게도 당당한 남편이 된 것 같아서 흐믓 합니다. 한 여자를 만나고 결혼해서는 무조건 여자의 말을 듣든 것이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좋은 것 같습니다. 家和萬事成.
댓글목록
김동원님의 댓글
김동원 작성일마눌님 말 들어서 나쁠것은 없는데, 다 그런것은 아니지요.허나 님은 결혼이라는것으로 모든게
김동원님의 댓글
김동원 작성일잘 풀린듯.부럽네요. ㅠㅠ
차재엽님의 댓글
차재엽 작성일장애를 극복하면 비장애인과 다름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값있는 인생을 사는법을 익힌 사람
차재엽님의 댓글
차재엽 작성일은 인간승리자라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