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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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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석정 댓글 0건 조회 691회 작성일 02-12-2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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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할아버지"



새로 산 신발이 이틀 만에 떨어졌다.
"몇 만 원을 그냥 날렸군요. 새해에 뭘 신을 거예요!" 아내의 잔소리에 나는 "고쳐 신으면 되겠지"하고 밖으로 나왔다. 큰 길 모퉁이에 구두 할아버지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곳에서 신발을 깁던 할아버지는 전쟁 때 폭탄을 맞아 다리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작은 의자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앞으로 옮기면서 이동했는데 그 의자 하나는 자기가 앉고 하나는 손님에게 내 주었다.
내 신발을 살펴본 할아버지는 까칠한 수염이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내일 찾아가게"라고 했다. 그러나 마침 일주일 정도 출장갈 일이 생겨 아내가 대신 찾아오기로 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날은 그해 마지막 날이었다. 온 가족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 저녁을 먹고 있는데 문득 신발이 떠올랐다. "눈이 많이 내려서 찾으러 갈 수가 없었어요."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나 역시 이렇게 추운 날에는 할아버지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다음날, 거리는 새해를 맞아 공원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내와 웃고 떠들며 길모퉁이를 돌아서던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구두 할아버지가 보자기 위에 내 신발을 올려놓고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급히 달려갔다. "할아버지, 새해 아침에도 일을 하세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말했다. "일은 무슨... 자네가 신발을 찾아가길 기다리고 있지." 그제야 나는 할아버지 옆에 공구상자가 없다는 걸 발견했다. "여태 저를 기다리셨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져가게. 이렇게 추운 날씨는 이 신발이 제격이야."
신발을 들고 선 내 가슴속에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것이 가득 차 올랐다.




"좋은생각" 2003년 1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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