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볼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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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님 댓글 3건 조회 681회 작성일 02-12-12 21:35본문
"넌 공부만 해라"
"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업을 갖고 네 힘으로 살아야 한다."
자라면서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들은 내게 알게 모르게 이런 방향을 제시하곤 했다.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특히 엄마의 영향이 컸는데, 그녀는 어쩌다 내가 이성에게 관심이라도 보이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그런 건 천박한 감정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녀는 철저히 옛날 여자였기에 여자란 자기 감정을 절제하며 다소곳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그러나 내겐 여자 형제들이 세 명이나 있는데, 언니와 여동생들에게 대한 태도와 나에 대한 태도는 조금 달랐다. 언니와 여동생은 예쁘게 하고 다니는 게 당연했지만 내가 혹시라도 그런 일에 관심을 보이면 왠지 주제넘은 짓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어려운 환경에서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다른 일에는 애써 무관심한 척했다.
남성과 같아지기 위해
대학 때 여성의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땐 '여자는 남자와 다르지 않다' '여자도 인간이다'는 논리가 팽배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남자들과 똑같은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오히려 남자들보다 우수하다는 걸 입증해야 남자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정말 처절하게 노력했던 듯하다. 여성으로서 가진 장점(예를 들면 포용력, 따뜻한 감성) 따윈 버려야 할 덕목으로까지 여겨졌다. 어떻게든 강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래서 예쁜 여자는 대체로 멍청한 여자, 나약한 여자, 의식 없이 길들여져 사는 여자로 여겼다. 어쩌면 장애여성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이라는 기준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는 반발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미스 코리아가 될 수 없고, 아무리 예쁘게 치장해도 아무도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장애여성도 충분히 아름답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몸은 추한 것,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외모에 의해 여성의 상품가치가 평가되는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 장애여성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한 번도 자신의 몸이 아름답다고 여겨 본 적이 없는 한 장애여성이 세계대회에서 만난 외국의 장애여성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노라는 고백을 접하고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다리보조기를 하고 빨간 미니 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나는 보조기도 안하고 휠체어도 타지 않은 조금은 보기 싫은 걸음걸이로 다니는 그런 대로 경한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지만 반바지나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 차림으로 밖에 나가는 건 주저하며 큰 용기를 내야 나가는데, 그곳에서 그런 장애인을 보았을 때 조그만 충격이 되었고 멋져 보였다. 어쩌면 이런 것도 장애여성도 똑같은 여성 속의 여성이라는 말없는 시위가 아닐까? 그렇게 다녀도 어색하지 않은 사회적인 분위기? 그게 정말 부러웠다."(윤미경, "참관기", 제1회 국제 장애여성 리더쉽 포럼 보고대회 자료집)
나도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다
왜 나는 한 번도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미니스커트는커녕 팔이 드러나는 민소매 웃옷조차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내 팔은 운동선수처럼 굵으니까. 목발을 짚는 장애인(장애여성)들은 대부분 팔이 굵고 어깨가 심하게 벌어져 있다. 난 그게 부끄러웠다. 만일 내가 민소매 옷을 입고 나가면 모두들 날 쳐다볼 것이다.
'쯧쯧, 꼴에 여자랍시고...'
'근데 남의 눈도 좀 생각해야지.'
그런 시선을 이겨낼 자신이 내게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스스로를 내면화해 자신의 몸을 부끄러운 것, 열등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나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남들이 날 중성(中性)이나 무성(無性)쯤으로 여기는 게 오히려 편했다. 왜 이쁘고 날씬한 여자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그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갖기 보다는 그저 편한 쪽을 택했다. 하지만 그건 남의 시선에 의해 길들여진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 또는 무성이라니... 그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희망한다
나는 엄연한 여성이며, 내게 감춰진 여성성(포용력이나 따뜻한 감성, 섬세함 등)이 곧 내 삶의 근원임을 깨닫게 되자 내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나는 앞으로 장애여성인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 내가 가진 장점을 충분히 살리며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나는 희망한다. 팔이 굵거나 아예 없어도, 다리가 굵거나 다리가 설사 없어도 민소매 옷과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업을 갖고 네 힘으로 살아야 한다."
자라면서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들은 내게 알게 모르게 이런 방향을 제시하곤 했다.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특히 엄마의 영향이 컸는데, 그녀는 어쩌다 내가 이성에게 관심이라도 보이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그런 건 천박한 감정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녀는 철저히 옛날 여자였기에 여자란 자기 감정을 절제하며 다소곳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분이었다. 그러나 내겐 여자 형제들이 세 명이나 있는데, 언니와 여동생들에게 대한 태도와 나에 대한 태도는 조금 달랐다. 언니와 여동생은 예쁘게 하고 다니는 게 당연했지만 내가 혹시라도 그런 일에 관심을 보이면 왠지 주제넘은 짓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어려운 환경에서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다른 일에는 애써 무관심한 척했다.
남성과 같아지기 위해
대학 때 여성의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땐 '여자는 남자와 다르지 않다' '여자도 인간이다'는 논리가 팽배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남자들과 똑같은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오히려 남자들보다 우수하다는 걸 입증해야 남자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정말 처절하게 노력했던 듯하다. 여성으로서 가진 장점(예를 들면 포용력, 따뜻한 감성) 따윈 버려야 할 덕목으로까지 여겨졌다. 어떻게든 강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래서 예쁜 여자는 대체로 멍청한 여자, 나약한 여자, 의식 없이 길들여져 사는 여자로 여겼다. 어쩌면 장애여성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이라는 기준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는 반발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미스 코리아가 될 수 없고, 아무리 예쁘게 치장해도 아무도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테니까.
장애여성도 충분히 아름답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몸은 추한 것,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외모에 의해 여성의 상품가치가 평가되는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 장애여성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한 번도 자신의 몸이 아름답다고 여겨 본 적이 없는 한 장애여성이 세계대회에서 만난 외국의 장애여성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노라는 고백을 접하고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다리보조기를 하고 빨간 미니 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나는 보조기도 안하고 휠체어도 타지 않은 조금은 보기 싫은 걸음걸이로 다니는 그런 대로 경한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지만 반바지나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 차림으로 밖에 나가는 건 주저하며 큰 용기를 내야 나가는데, 그곳에서 그런 장애인을 보았을 때 조그만 충격이 되었고 멋져 보였다. 어쩌면 이런 것도 장애여성도 똑같은 여성 속의 여성이라는 말없는 시위가 아닐까? 그렇게 다녀도 어색하지 않은 사회적인 분위기? 그게 정말 부러웠다."(윤미경, "참관기", 제1회 국제 장애여성 리더쉽 포럼 보고대회 자료집)
나도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다
왜 나는 한 번도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미니스커트는커녕 팔이 드러나는 민소매 웃옷조차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내 팔은 운동선수처럼 굵으니까. 목발을 짚는 장애인(장애여성)들은 대부분 팔이 굵고 어깨가 심하게 벌어져 있다. 난 그게 부끄러웠다. 만일 내가 민소매 옷을 입고 나가면 모두들 날 쳐다볼 것이다.
'쯧쯧, 꼴에 여자랍시고...'
'근데 남의 눈도 좀 생각해야지.'
그런 시선을 이겨낼 자신이 내게는 없다. 나는 사회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스스로를 내면화해 자신의 몸을 부끄러운 것, 열등한 것으로 생각해 왔다. 나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남들이 날 중성(中性)이나 무성(無性)쯤으로 여기는 게 오히려 편했다. 왜 이쁘고 날씬한 여자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 그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갖기 보다는 그저 편한 쪽을 택했다. 하지만 그건 남의 시선에 의해 길들여진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 또는 무성이라니... 그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희망한다
나는 엄연한 여성이며, 내게 감춰진 여성성(포용력이나 따뜻한 감성, 섬세함 등)이 곧 내 삶의 근원임을 깨닫게 되자 내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나는 앞으로 장애여성인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고, 내가 가진 장점을 충분히 살리며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살아갈 생각이다.
나는 희망한다. 팔이 굵거나 아예 없어도, 다리가 굵거나 다리가 설사 없어도 민소매 옷과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댓글목록
신명진님의 댓글
신명진 작성일방송으로 들으니 새롭내요~! ^^" 우리 어린친구들 수고했어~♡
유지삼님의 댓글
유지삼 작성일그날 올레길을 걷던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
오미령님의 댓글
오미령 작성일재준이에게는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살아나나봐요. 거듭 감사합니다-대전의 이재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