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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석정 댓글 0건 조회 604회 작성일 03-01-29 23:20본문
2003/01/29 19:12
“법학도 꿈★앞에 장애는 없었다”…손위용씨 서울법대 합격
두 다리가 없는 장애를 딛고 50세의 나이로 29일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손위용씨. 그는 사진 촬영 때 의수족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정재락기자 《‘멀고 긴’ 길을 돌아왔다. 29일 서울대 법대 입학의 꿈을 이룬 50세의 손위용(孫偉勇·울산 남구 신정2동)씨. 그는 이날 2003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발표를 보면서 지난 33년을 떠올렸다.》
울산에서 초·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손씨는 1969년 부산고에 입학했다. 편모 슬하의 어려운 가정형편. 학교 근처에 숙소를 잡지 못했고 울산에서 오전 4시50분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통학해야 했다. 왕복 5시간이 넘는 길이다. 그렇지만 그는 단 한번도 결석한 일이 없었고 성적은 항상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있던 그에게 먹구름이 닥친 것은 고교 2년 때인 1970년 7월. 평소에는 오전 7시15분 부산역에 도착해야 할 열차가 폭우 때문에 동래에서 멈춰 섰다. 오전 9시반이 지나자 그는 등교를 포기하고 울산으로 되돌아가는 열차에 막 옮겨 탔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것을 본 그는 부리나케 뛰어내려 부산행 열차의 손잡이를 잡고 뛰어올랐다. 빗물 때문에 미끄러워진 손잡이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열차에서 떨어지며 치였고 결국 두 다리를 잃었다.
1년간 휴학 끝에 자퇴서를 낸 그는 그해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러나 할 일이 마땅히 없었다. 생계를 위해 동네 아이들 과외에 나섰다. 차츰 과외강사로 기반이 잡히면서 75년에는 결혼도 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열심히 가르친 덕분에 한때는 지도하는 학생이 100여명이 될 정도로 ‘유명 강사’가 됐다.
하지만 손씨를 기다리는 것은 여전히 ‘불운’뿐이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무리한 탓에 1980년에는 과로로 쓰러졌다. 52㎏이었던 몸무게는 30㎏까지 줄었고 힘겹고 지루한 4년간의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겨우 기력을 회복해 86년 누나의 도움으로 금은방을 시작했지만 남에게 재정보증을 해주는 바람에 1996년에는 2억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살던 집도 경매로 넘어갔다. 막내딸이 97년 대구 모대학 약대에 합격했으나 입학금이 없어 입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겨우 입에 풀칠하던 손씨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며 다시 과외수업에 나섰다. 그리고 세 딸을 모두 대학에 진학시켰다.
어느덧 어른이 된 딸들은 아버지의 한(恨)을 풀어주고 싶어했다. ‘더 늦기 전에 대학에 가라’는 권유를 하기 시작했다. 손씨는 30년 전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1년부터 과외강의를 하는 틈틈이 입시 준비에 들어갔다. 결국 지난해 수능에서 331점을 받아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꿈꾸었던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손씨는 “25년간 착용하던 낡은 의족을 최근 바꿨다”고 했다. 서울대 계단을 더 빠르게 오르내리려는 생각에서다. 그는 “장애는 인생에서 겪는 많은 불행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꿈과 용기를 갖고 도전한다면 못하는 일은 없다”고도 했다.
손씨는 “그동안 공부를 왜 일찍 시작하지 않았는지를 후회한 적은 있어도 신체장애가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번도 없다”며 “그동안 남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았기에 앞으로 남들을 돕는 일에 생을 바칠 각오”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촬영 때 의수족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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