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내마음속에 이야기..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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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연`S 댓글 1건 조회 669회 작성일 03-08-18 22:46본문
나는...17살 이후의 나는. 뛰기는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오래 서있지도 못한다.;
17년 동안 맘껏 활동하면서 살아왔던 인생. 그리고 한순간에
바꿔 놓은 지금 의 내 인생.
아마..평생 이렇게 살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게 비참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도 싫고,
미래를 생각해봐도.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는다면 나는 내 자식이 위험과
두려움 등의 일에 처했을 때 빨리 달려가 안아주지도..
지켜주지도 못할 것이다. 또 내가 5급의 장애인이란 사실조차
나를 힘들게 만단다. 아직 1년 조금 넘은..
그래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게 아직은 힘든 내 몸과 마음들..
"왜 나에게?"
한때는 이런 생각들로 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곤 했었다.
몇 날 몇 일의 슬럼프에 빠져들어 나만의 세상 속으로만
들어가 버리려 했던 날들..
모든걸 포기하려 했던 날들도..
나를 키우시며, 내가 자랑스럽고 이뿌게 커 가는 모습을 보며 항상
웃음지어주시고. 뿌듯하게 생각하시던 부모님. 내 인생이 바뀐 그날.
나는 우리 아빠의 눈물과 절망감을 보았다.
몰려든 사람들 속에서 나를 안아 주시며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던
모습과..많은 고민 끝에 찾았던 내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이였다.
병원에서는 단호하게 다리를 "절단" 하자는 말을 하였으며,
그때까지도 내 상태가 그 정도까지 이었는지도 몰랐다.
몇 시간까지만 해도 집에서 뛰어 나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를 외치며 나오던 나......
아무리 시련은 예고도 없이 온다지만...
기차 밑에 누워 내 몸위를 지나가는 순간..나는 무얼 생각했었는지..
과연..누가 날 어떻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한동안 이런 생각에 잠겨 병원생활을 해나갔다.
3번에 걸친 수술.
첫 번째 수술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당일 있었던 수술..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
동안 단단한 버팀목이 되주었던 내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아픔보다도 절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마취를 하기 직전까지. 4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나에겐 다시
희망이 생겼다. 정말 사고 나고 3주일동안이나 나의 맘속에 커다랗게
자라고 있던 희망.
피만 통하면..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말 "천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그 희망도 2차 수술을 해야한다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그날..희망이 깨져버린 그날.. 나는 아마 사고 난 날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깊은 절망 속으로 떨어지는 나. 그리고 그 옆에서 지켜보며
더 힘들어했던..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던 사람들..
수술 날이 다가오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나는 나의 손을
꼭 붙잡고 우시는 우리 아빠와 엄마.. 그때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던 나..
잘하고 오라고..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슬펐는지. 수술실에 들어가
기다리는 중에 눈물이 많이 흘렀다. 그렇게 복바쳐 너무 힘들고,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는 사람이 너무 미워서..
2차 수술의 확률은 50%이었다. 다리의 절단 부위를 줄이는 대신 가슴
옆쪽의 살을 띄어내 피부이식을 해야해서 여자로서의 타격을 크게 입을
수 있는 대 수술 이였다.
회복실에서 약간의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병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계속 나오는 구토와 힘겨움 속에서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처음 보는 내 모습.. 어딘가 한곳이 빈..
없어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그 옆에는 나의 부모님.
친척 분들이 그 모습을 보며 흐느꼈다. 눈뜨고 보기조차 싫었던 모습..
차라리 외면 해버리고 싶은..하지만 인간이란 정말 대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변화된 내 모습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고,
마지막 3차 수술인 간단한 수술이 끝나고
점점 상처가 아물어 감에 따라 내 몸에 알맞은..내가 다시 걷게 될 수
있도록 "의족" 이라는 정말 예전에는 생각도 못 꿨던..
그러한 보조기구를 맞추게 되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외관상으로는 똑같은,
그래도 거부감이 느꼈던 내 새로운 발이 처음 오던 날 ..
그리고 내..빈자리..없어진 곳에 새로 자리 잡아 껴진 의족.
정말 싫었다. 혐오감이라고 했을까?
희망보다는 서러움이 더욱 컸다. 그렇게 병원생활이 끝나고,
퇴원을 해 집에 돌아왔다. 병원에서 계속 그리웠던..
그리고 집에 있는 동안에 낯설게만 느껴지는 의족을 사용하지
않은 덕분에 다리에 있던 붓기가 빠지지 않아 결국엔 의족이 맞지 않게
되었다. 아무 것도 모른 상태로 그냥 맞지도 않는 의족을 내몸에
착용하고 그 동안 다니지 못했던 학교에 교복을 입고 절뚝거리며
학교생활을 해나갔다..학교 생활에서는 거의 화장실 정도만 다녀올
정도로..
학교생활을 하며 친구들이 체육수업을 하는 모습..체력장을 할 때,
봉사활동을 하러간 친구들을 보내고, 교실에 혼자 남아 여러
생각들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
그리고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아니, 돌아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도 했고, 자꾸 절뚝거리며 걷게 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내 마음대로 걸어지지 않는 다리 때문에 의족을 빼내어 버리고
싶었던 마음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냥..그냥..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그냥 눈물이 흐르는 시간들..
작은 말 한마디..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그런 말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왜 나한테만 이리는 자괴심에 빠져 버려
하루종일 우울해 졌을 때도 많이 있었다.
그렇게 맞지도 않는 의족을 착용하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가 겨울방학을
하고 나서 우연히 다른 의족 맞추는 곳을 알게 되어서 그전보다는 걷는
모양과 빠르기 등도 훨씬 낫아 졌지만..
지금은 신경이 거의 다 끊어지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내 왼쪽 다리는
성장을 멈춰버렸고, 아직도 성장할 수 있는 내 나이 덕택에 양쪽
다리사이에는 길이의 차이가 점점 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지금엔 3Cm
정도가 차이가 나게 되었다. 그러니 결국 절뚝되지 않는다는 자체가
이상할 것일 수도.. 지나치던 사람들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왜 다리를
저냐고 말하며 물어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씩씩하게.. 정말 겉으로나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며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저렇게 되도 잘 살아
가는구나! 나는 쟤보다 훨씬 나은데 더 잘 살아가야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속에서는 그게 아닌 데라고 하는데도,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기에..그 사람들에게 나로 인해서 큰 아픔과 실망을 입었기에..
그것들을 보답할 수 있도록..속으로는 내가 아프더라도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지만..그래도..아직은 어려서 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감정절제가 잘 되지 않는다.
내가 힘들어하면 주위 사람들이 더 힘들어 할꺼라는 걸 알지만,
머리로는 충분히 알지만..마음이 자꾸 되질 않는다.
최근 쫌 심하게 슬럼프 기간이 있었지만..신은 자신이 감당하 수 있는
시련만 준다고 했기에..이 일을 발판 삼아서, 내가 가야할 길이
이 길이라고 생각하며, 더 좋은 인생을 위해 그까짓 발 한 부분
희생했다는..
하나님에게 다시 반납했다고 생각을 하며, 17년동안 다른 오른쪽
발과 함께나에게 뛰어놀고, 달리기도 하고, 운동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왼쪽 다리. 지금은 없지만...
그 다리를 나에게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욱 힘들고 큰 시련이 다가 올 수도 있고, 많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더욱더 강해져서 내가 하고싶은일..
그리고 예전보다 더 낫은 인생으로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나에게 주신 길... 이 길을 걸어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포기하는 삶을 만들지 않도록.. "시련은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든다"라는 말도 있듯이 꼭 특별하고 나 스스로도 자랑스러워 질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모든 장애인분들...
우리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 좀 더
희망과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긴 바랍니다..
장애인분들 뿐만 아니라, 삶을 포기하려 하는 분들, 또 나태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힘들 일이 있는 분들도 다시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간이란 정말 위대한 존재이니깐요..^-^!!
오래 서있지도 못한다.;
17년 동안 맘껏 활동하면서 살아왔던 인생. 그리고 한순간에
바꿔 놓은 지금 의 내 인생.
아마..평생 이렇게 살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게 비참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도 싫고,
미래를 생각해봐도.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는다면 나는 내 자식이 위험과
두려움 등의 일에 처했을 때 빨리 달려가 안아주지도..
지켜주지도 못할 것이다. 또 내가 5급의 장애인이란 사실조차
나를 힘들게 만단다. 아직 1년 조금 넘은..
그래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게 아직은 힘든 내 몸과 마음들..
"왜 나에게?"
한때는 이런 생각들로 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곤 했었다.
몇 날 몇 일의 슬럼프에 빠져들어 나만의 세상 속으로만
들어가 버리려 했던 날들..
모든걸 포기하려 했던 날들도..
나를 키우시며, 내가 자랑스럽고 이뿌게 커 가는 모습을 보며 항상
웃음지어주시고. 뿌듯하게 생각하시던 부모님. 내 인생이 바뀐 그날.
나는 우리 아빠의 눈물과 절망감을 보았다.
몰려든 사람들 속에서 나를 안아 주시며 괜찮다고 말씀해 주시던
모습과..많은 고민 끝에 찾았던 내 꿈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이였다.
병원에서는 단호하게 다리를 "절단" 하자는 말을 하였으며,
그때까지도 내 상태가 그 정도까지 이었는지도 몰랐다.
몇 시간까지만 해도 집에서 뛰어 나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를 외치며 나오던 나......
아무리 시련은 예고도 없이 온다지만...
기차 밑에 누워 내 몸위를 지나가는 순간..나는 무얼 생각했었는지..
과연..누가 날 어떻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한동안 이런 생각에 잠겨 병원생활을 해나갔다.
3번에 걸친 수술.
첫 번째 수술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다.
당일 있었던 수술..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
동안 단단한 버팀목이 되주었던 내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아픔보다도 절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마취를 하기 직전까지. 4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나에겐 다시
희망이 생겼다. 정말 사고 나고 3주일동안이나 나의 맘속에 커다랗게
자라고 있던 희망.
피만 통하면..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말 "천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그 희망도 2차 수술을 해야한다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그날..희망이 깨져버린 그날.. 나는 아마 사고 난 날보다 더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깊은 절망 속으로 떨어지는 나. 그리고 그 옆에서 지켜보며
더 힘들어했던..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던 사람들..
수술 날이 다가오고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나는 나의 손을
꼭 붙잡고 우시는 우리 아빠와 엄마.. 그때까지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던 나..
잘하고 오라고..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슬펐는지. 수술실에 들어가
기다리는 중에 눈물이 많이 흘렀다. 그렇게 복바쳐 너무 힘들고, 이런
시련을 나에게 주는 사람이 너무 미워서..
2차 수술의 확률은 50%이었다. 다리의 절단 부위를 줄이는 대신 가슴
옆쪽의 살을 띄어내 피부이식을 해야해서 여자로서의 타격을 크게 입을
수 있는 대 수술 이였다.
회복실에서 약간의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병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계속 나오는 구토와 힘겨움 속에서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처음 보는 내 모습.. 어딘가 한곳이 빈..
없어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그 옆에는 나의 부모님.
친척 분들이 그 모습을 보며 흐느꼈다. 눈뜨고 보기조차 싫었던 모습..
차라리 외면 해버리고 싶은..하지만 인간이란 정말 대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변화된 내 모습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고,
마지막 3차 수술인 간단한 수술이 끝나고
점점 상처가 아물어 감에 따라 내 몸에 알맞은..내가 다시 걷게 될 수
있도록 "의족" 이라는 정말 예전에는 생각도 못 꿨던..
그러한 보조기구를 맞추게 되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외관상으로는 똑같은,
그래도 거부감이 느꼈던 내 새로운 발이 처음 오던 날 ..
그리고 내..빈자리..없어진 곳에 새로 자리 잡아 껴진 의족.
정말 싫었다. 혐오감이라고 했을까?
희망보다는 서러움이 더욱 컸다. 그렇게 병원생활이 끝나고,
퇴원을 해 집에 돌아왔다. 병원에서 계속 그리웠던..
그리고 집에 있는 동안에 낯설게만 느껴지는 의족을 사용하지
않은 덕분에 다리에 있던 붓기가 빠지지 않아 결국엔 의족이 맞지 않게
되었다. 아무 것도 모른 상태로 그냥 맞지도 않는 의족을 내몸에
착용하고 그 동안 다니지 못했던 학교에 교복을 입고 절뚝거리며
학교생활을 해나갔다..학교 생활에서는 거의 화장실 정도만 다녀올
정도로..
학교생활을 하며 친구들이 체육수업을 하는 모습..체력장을 할 때,
봉사활동을 하러간 친구들을 보내고, 교실에 혼자 남아 여러
생각들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
그리고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아니, 돌아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도 했고, 자꾸 절뚝거리며 걷게 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내 마음대로 걸어지지 않는 다리 때문에 의족을 빼내어 버리고
싶었던 마음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냥..그냥..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그냥 눈물이 흐르는 시간들..
작은 말 한마디..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그런 말 한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왜 나한테만 이리는 자괴심에 빠져 버려
하루종일 우울해 졌을 때도 많이 있었다.
그렇게 맞지도 않는 의족을 착용하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가 겨울방학을
하고 나서 우연히 다른 의족 맞추는 곳을 알게 되어서 그전보다는 걷는
모양과 빠르기 등도 훨씬 낫아 졌지만..
지금은 신경이 거의 다 끊어지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내 왼쪽 다리는
성장을 멈춰버렸고, 아직도 성장할 수 있는 내 나이 덕택에 양쪽
다리사이에는 길이의 차이가 점점 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지금엔 3Cm
정도가 차이가 나게 되었다. 그러니 결국 절뚝되지 않는다는 자체가
이상할 것일 수도.. 지나치던 사람들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왜 다리를
저냐고 말하며 물어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씩씩하게.. 정말 겉으로나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며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저렇게 되도 잘 살아
가는구나! 나는 쟤보다 훨씬 나은데 더 잘 살아가야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속에서는 그게 아닌 데라고 하는데도,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기에..그 사람들에게 나로 인해서 큰 아픔과 실망을 입었기에..
그것들을 보답할 수 있도록..속으로는 내가 아프더라도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지만..그래도..아직은 어려서 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지, 감정절제가 잘 되지 않는다.
내가 힘들어하면 주위 사람들이 더 힘들어 할꺼라는 걸 알지만,
머리로는 충분히 알지만..마음이 자꾸 되질 않는다.
최근 쫌 심하게 슬럼프 기간이 있었지만..신은 자신이 감당하 수 있는
시련만 준다고 했기에..이 일을 발판 삼아서, 내가 가야할 길이
이 길이라고 생각하며, 더 좋은 인생을 위해 그까짓 발 한 부분
희생했다는..
하나님에게 다시 반납했다고 생각을 하며, 17년동안 다른 오른쪽
발과 함께나에게 뛰어놀고, 달리기도 하고, 운동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왼쪽 다리. 지금은 없지만...
그 다리를 나에게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욱 힘들고 큰 시련이 다가 올 수도 있고, 많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더욱더 강해져서 내가 하고싶은일..
그리고 예전보다 더 낫은 인생으로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나에게 주신 길... 이 길을 걸어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포기하는 삶을 만들지 않도록.. "시련은 평범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든다"라는 말도 있듯이 꼭 특별하고 나 스스로도 자랑스러워 질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모든 장애인분들...
우리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해 좀 더
희망과 힘든 일이 있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긴 바랍니다..
장애인분들 뿐만 아니라, 삶을 포기하려 하는 분들, 또 나태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힘들 일이 있는 분들도 다시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간이란 정말 위대한 존재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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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님의 댓글
김진희 작성일진짜루... 잘 생겼더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