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 서비스 류 NO.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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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 영탄 댓글 0건 조회 637회 작성일 04-12-14 23:53본문
밤 10:10. TUE
안녕하세요!
처음 방문하시는 님.
영탄이 [글]에는 <정보>가 없습니다.
그냥 만5년차 ㅡ 1999년 6월 24일 꽝! ㅡ 좌측하퇴 7CM 절단장애인의
현재 과거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정보>를 희망하는 님께서는 [퀵 서비스 류 NO.36]을 참고하십시오.
여기 데코님들의 위대한 <정보의 바다>가 있습니다.
<최신정보>
4595 ㅡ 재밌네요^^ 팝송영어가 발음 익히는데는 최고! ㅡ 즐영님ㅡ04-12-11-土
4585 ㅡ 해외여행시 이용하면 편리한 휠채어 서비스 ㅡ 차종태님ㅡ04-12-10-金
4568 ㅡ 초보 질문입니다. ㅡ 페라리님 ㅡ 04-12-8-水
내일부터 퀵 시작할려고 계획했는데 수정 !
하루만 더 정신 보호하고 16일 목요일부터 퀵 시작예정입니다.
사탄과 목사님과의 만남.
어머니가 존경하고 편집장님이 사랑하는 목사님의 방문.
목사님 : 011 ㅡ 458 ㅡ 3833
영탄이와 목사님과의 전쟁같은 평화.
종교가 없지만 종교인을 존경하는 영탄이 깊은 말씀 소중히 경험했습니다.
내일은 비가 오시고 안녕하시면 정신의 수양을 위하여
友신부님과 友스님을 오랫만에 방문 할 예정입니다.
정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주말에....!
다시 경험한 위대한 [책]
法頂스님의 <無所有>
스님의 가르침대로 정신으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말씀 지껄이지 않고 사랑하는 데코님들께
영탄이 말이 아닌 위대한자의 말씀 그대로를 전합니다.
오랫만에 경험하는 목사님의 육성.
오랫만에 경험하는 스 님의 고전.
오랫만에 경험하는 사부의 말씀.
모두 소중합니다.
목사님 曰
모든것이 하나님의뜻.
사탄이 권하는 맥주 한잔을 거침없이 드시며
목사님 앞에서 맥주를 마시는 영탄이를
소중한 연민으로 바라보시며 분명히 영탄이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있으셔서 위험에서 다시 한 번
목숨을 구해주심에 감사의 기도를 하여 주십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고맙습니다.
강건하세요 !
法頂스님 曰
나는 이 겨울에도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한두 구절과 문장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한 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日常을 깨우쳐준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씌어진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씌어졌을 것 같다.
책을 머리로 읽지말고 정신으로 경험하라 !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울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가 있다.
法頂스님 ㅡ <無所有> 中에서
師父 曰
착한 척 하지말라 !
人生은 착한 척 할 시간이 없다 !
ㅡ 역도산님 말씀 中에서 ㅡ
目標는 하나 方法은 多數 !
데코님들 강건하세요 !
<誤 解>
세상에서 對人關係 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 또 있을까.
까딱 잘못하면 남의 입살에 오르내려야 하고,
때로는 이쪽 생각과는 엉뚱하게 다른 誤解도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웃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고자 일상의 우리는 한가롭지 못하다.
理解란 정말 가능한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노라고 입술에 침을 바른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이해가 진실한 것이라면
항상 不變해야 할 텐데 번번이 오해의 구렁으로 떨어져버린다.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言論自由에 속한다.
남이 나를, 또한 내가 남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他人.
사람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事物에 대한 이해도 따지고 보면
그 관념의 伸縮作用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걸 보아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하니까 우리는 하나의 色盲에 불과한 존재.
그런데 세상에는 例의 색맹이 또 다른 색맹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안달이다.
연인들은 자기만이 상대방을 속속들이 이해하려는 맹목적인 열기로 하여
오해의 안개 속을 헤매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것이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宗團 기관지에 무슨 글을 썼더니
한 事務僧이 내 안면 신경이 간지럽도록 칭찬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날 오해하고 있군. 자네가 날 어떻게 안단 말인가.]
[만약 자네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라도 있게 되면,]
[지금 칭찬하던 바로 그 입으로 나를 또 헐뜯을 텐데.]
[그만두게, 그만둬.]
아니나다를까,
바로 그 다음호에 실린 글을 보고서는 입에 게거품을 물어가며
죽일 놈 살릴 놈 이빨을 드러냈다.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거 보라고, 내가 뭐랬어.]
[그게 오해라고 하지 않았어.]
[그건 말짱 오해였다니까.]
<누가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일도 못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에.>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 아닌가.>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實相은 言外에 있는 것이고
眞理는 누가 뭐라 하건 흔들리지 않는 법.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기랄,
그건 말짱 오해라니까.
ㅡ 中央日報, 1972년 1월 31일 ㅡ 法頂스님의 에세이 中에서 ㅡ
評論家 曰
法頂을 통해 나타나는 불교는 체념과 도피,
초속(超 : 뛰어넘을, 俗 : 풍속, 속세, 세상사람)과
허무 (虛無)와 무위(無爲)의
그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괴로워하며 비판하고 사랑하는 불교의 모습이다.
그것은 이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이롭게 바라보고 자기 삶의 확대로 체득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다.
절의 들에 핀 양귀비를 보았을 때 느낀 다음과 같은 정서는
이 세계의 가장 內密(내밀)한 부분과 通精 (통정) 하는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명쾌하게 해부한다.
그것은 경이였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중략) .....
아름다움이란 떨림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法 頂 論 >中에서
<왜 ! 기도해야 하는가>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방탕하는 아들 어거스틴이 매일 같이 술에 만취되고
창기와 더블어 외박하며 썩은 세상에 깊이 빠져 들고 있는 아들을 본 그의 심정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루는 신부님께 자기의 입장을 말씀드렸다.
신부님은 눈물을 흘리는 모니카에게
[어머니의 눈물이 담긴 기도가 있는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신부님의 이 말에 힘을 얻은 모니카는 밤이 맞도록 호롱불 아래서 아들 어거스틴의
이름을 불러가며 눈이 퉁퉁 붓도록 애절한 기도를 하느님께 드렸다.
하루는 어거스틴이 얼큰히 취해서 집을 찾아 들어 오다가
호롱불에 비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눈물 흘리며 자기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끓고
[어머니 나는 불효자입니다]라고
외쳐 울기 시작한 것이 위대한 성자 어거스틴이 탄생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기도하는 숨소리,
쓰라린 표현의 눈물,
짜내는 땀,
몸부림 치는 육체가
매일 하느님께 오르는 가정은 평온하리다.
어찌 기도를 시간 낭비라 하랴 !
실로 기도는 일중에 일이요, 진주 같은 값진 열매입니다.
ㅡ 오관석 신부님 지음 ㅡ
영탄 曰
하늘을 보고 걸어라.
다만 땅의 위험함을 감지하라.
그리고 입좀 벌리고 걷지마라.
먼지 들어간다 !
道 (길)를 가라.
正義의 目標는 하나 方法은 多數 !
아들에게 !
데코님들 강건하세요 !
안녕하세요!
처음 방문하시는 님.
영탄이 [글]에는 <정보>가 없습니다.
그냥 만5년차 ㅡ 1999년 6월 24일 꽝! ㅡ 좌측하퇴 7CM 절단장애인의
현재 과거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정보>를 희망하는 님께서는 [퀵 서비스 류 NO.36]을 참고하십시오.
여기 데코님들의 위대한 <정보의 바다>가 있습니다.
<최신정보>
4595 ㅡ 재밌네요^^ 팝송영어가 발음 익히는데는 최고! ㅡ 즐영님ㅡ04-12-11-土
4585 ㅡ 해외여행시 이용하면 편리한 휠채어 서비스 ㅡ 차종태님ㅡ04-12-10-金
4568 ㅡ 초보 질문입니다. ㅡ 페라리님 ㅡ 04-12-8-水
내일부터 퀵 시작할려고 계획했는데 수정 !
하루만 더 정신 보호하고 16일 목요일부터 퀵 시작예정입니다.
사탄과 목사님과의 만남.
어머니가 존경하고 편집장님이 사랑하는 목사님의 방문.
목사님 : 011 ㅡ 458 ㅡ 3833
영탄이와 목사님과의 전쟁같은 평화.
종교가 없지만 종교인을 존경하는 영탄이 깊은 말씀 소중히 경험했습니다.
내일은 비가 오시고 안녕하시면 정신의 수양을 위하여
友신부님과 友스님을 오랫만에 방문 할 예정입니다.
정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주말에....!
다시 경험한 위대한 [책]
法頂스님의 <無所有>
스님의 가르침대로 정신으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말씀 지껄이지 않고 사랑하는 데코님들께
영탄이 말이 아닌 위대한자의 말씀 그대로를 전합니다.
오랫만에 경험하는 목사님의 육성.
오랫만에 경험하는 스 님의 고전.
오랫만에 경험하는 사부의 말씀.
모두 소중합니다.
목사님 曰
모든것이 하나님의뜻.
사탄이 권하는 맥주 한잔을 거침없이 드시며
목사님 앞에서 맥주를 마시는 영탄이를
소중한 연민으로 바라보시며 분명히 영탄이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있으셔서 위험에서 다시 한 번
목숨을 구해주심에 감사의 기도를 하여 주십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고맙습니다.
강건하세요 !
法頂스님 曰
나는 이 겨울에도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한두 구절과 문장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한 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日常을 깨우쳐준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씌어진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씌어졌을 것 같다.
책을 머리로 읽지말고 정신으로 경험하라 !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울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가 있다.
法頂스님 ㅡ <無所有> 中에서
師父 曰
착한 척 하지말라 !
人生은 착한 척 할 시간이 없다 !
ㅡ 역도산님 말씀 中에서 ㅡ
目標는 하나 方法은 多數 !
데코님들 강건하세요 !
<誤 解>
세상에서 對人關係 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일이 또 있을까.
까딱 잘못하면 남의 입살에 오르내려야 하고,
때로는 이쪽 생각과는 엉뚱하게 다른 誤解도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웃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고자 일상의 우리는 한가롭지 못하다.
理解란 정말 가능한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상대방을 이해하노라고 입술에 침을 바른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이해가 진실한 것이라면
항상 不變해야 할 텐데 번번이 오해의 구렁으로 떨어져버린다.
나는 당신을 이해합니다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言論自由에 속한다.
남이 나를, 또한 내가 남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他人.
사람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事物에 대한 이해도 따지고 보면
그 관념의 伸縮作用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걸 보아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하니까 우리는 하나의 色盲에 불과한 존재.
그런데 세상에는 例의 색맹이 또 다른 색맹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안달이다.
연인들은 자기만이 상대방을 속속들이 이해하려는 맹목적인 열기로 하여
오해의 안개 속을 헤매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것이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宗團 기관지에 무슨 글을 썼더니
한 事務僧이 내 안면 신경이 간지럽도록 칭찬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날 오해하고 있군. 자네가 날 어떻게 안단 말인가.]
[만약 자네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라도 있게 되면,]
[지금 칭찬하던 바로 그 입으로 나를 또 헐뜯을 텐데.]
[그만두게, 그만둬.]
아니나다를까,
바로 그 다음호에 실린 글을 보고서는 입에 게거품을 물어가며
죽일 놈 살릴 놈 이빨을 드러냈다.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거 보라고, 내가 뭐랬어.]
[그게 오해라고 하지 않았어.]
[그건 말짱 오해였다니까.]
<누가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일도 못된다>
<그건 모두가 한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에.>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 아닌가.>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다.
實相은 言外에 있는 것이고
眞理는 누가 뭐라 하건 흔들리지 않는 법.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기랄,
그건 말짱 오해라니까.
ㅡ 中央日報, 1972년 1월 31일 ㅡ 法頂스님의 에세이 中에서 ㅡ
評論家 曰
法頂을 통해 나타나는 불교는 체념과 도피,
초속(超 : 뛰어넘을, 俗 : 풍속, 속세, 세상사람)과
허무 (虛無)와 무위(無爲)의
그것이 아니라
참여하고 괴로워하며 비판하고 사랑하는 불교의 모습이다.
그것은 이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이롭게 바라보고 자기 삶의 확대로 체득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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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명쾌하게 해부한다.
그것은 경이였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다..... (중략) .....
아름다움이란 떨림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法 頂 論 >中에서
<왜 ! 기도해야 하는가>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방탕하는 아들 어거스틴이 매일 같이 술에 만취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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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루는 신부님께 자기의 입장을 말씀드렸다.
신부님은 눈물을 흘리는 모니카에게
[어머니의 눈물이 담긴 기도가 있는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신부님의 이 말에 힘을 얻은 모니카는 밤이 맞도록 호롱불 아래서 아들 어거스틴의
이름을 불러가며 눈이 퉁퉁 붓도록 애절한 기도를 하느님께 드렸다.
하루는 어거스틴이 얼큰히 취해서 집을 찾아 들어 오다가
호롱불에 비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눈물 흘리며 자기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끓고
[어머니 나는 불효자입니다]라고
외쳐 울기 시작한 것이 위대한 성자 어거스틴이 탄생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기도하는 숨소리,
쓰라린 표현의 눈물,
짜내는 땀,
몸부림 치는 육체가
매일 하느님께 오르는 가정은 평온하리다.
어찌 기도를 시간 낭비라 하랴 !
실로 기도는 일중에 일이요, 진주 같은 값진 열매입니다.
ㅡ 오관석 신부님 지음 ㅡ
영탄 曰
하늘을 보고 걸어라.
다만 땅의 위험함을 감지하라.
그리고 입좀 벌리고 걷지마라.
먼지 들어간다 !
道 (길)를 가라.
正義의 目標는 하나 方法은 多數 !
아들에게 !
데코님들 강건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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