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 서비스 류 NO.62 <2005年 강건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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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 영탄 댓글 0건 조회 868회 작성일 05-01-01 00:29본문
2005年 1月 1日 土曜日. 새로운 시작의 첫 시간 !
첫날 밤 12:33
큰 형님댁에서 대가족 모임을 즐기고 처가집 말뚝만 바라봐도 좋은 편집장님의 고향에
와서 다시 한잔 * 아버님 * 어머님과 처제와 가볍게 한잔 즐기고 새해 첫 글 올립니다
師父 曰
인간의 일상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게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하고 擧止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自己省察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 孚沈하면서 살아가는
범속한 日常人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자기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惰性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하게 처신을 하면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지겹고 답답해 숨막힐 일이지만 그래도 그렁저렁 헛눈을 팔면서 살아가고 있
다. 이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혹은 한강 인도교의 비어 꼭대기에 올라가 뉴스거리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되돌아 오고 만다.
자기의 인생을 처음 부터 다시 시작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별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불쑥 망우리를 찾아간 일이 있다.
짖궂은 성미에서가 아니라 성에 차지 않게 생각하는 그의 生을 죽음 쪽에서 照明해주
고 싶어서였다. 餘地가 없는 무덤들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망우리 !
과연 이동네에서는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누워 있는 것
일까. 우뚝우뚝 차갑게 지켜 서 있는 그 碑石들만 아니라면 지극히 평온할 것 같았다.
죽어본 그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만약 그들을 깊은 잠에서 불러 깨운다면 그들은 되찾은 生을 어떻게 살아갈까?
사형수에게는 일분 일초가 생명 그 자체로 실감된다고 한다.
그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
그래서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영탄이 역시 제주도 감옥에서 600번 노란명찰 김 병옥을 경험했다.
갑판장이었던 그는 파도가 몰아치는 선상위에서 선원들의 폭동과 맞써 싸우는 과정에
서 알수 없는 기운에 미쳐 선상용 낫으로 세명을 살해하고 말았다.
영탄이와 동갑이었던 그는 오늘만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영탄이 출소 후 몇년 후에 600번의 소식을....!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곧잘 다음날로 미루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
생명의 한 토막인 하루 하루를 소홀히 낭비하면서도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장엄한 落照 같은 것을 느낄것이다.
단조로운 듯한 반복 속에서 深化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이 심화 없는 범속한 되풀이만이라면 두 자리 반으로 족한 \" 듣기 좋은
노래 \" 가 되고 말것이다.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生을 조명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
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심화를 위해서 !
데코님들 행복한 2005年입니다.
다시 시작 하십시오.
강건하세요 !
첫날 밤 12:33
큰 형님댁에서 대가족 모임을 즐기고 처가집 말뚝만 바라봐도 좋은 편집장님의 고향에
와서 다시 한잔 * 아버님 * 어머님과 처제와 가볍게 한잔 즐기고 새해 첫 글 올립니다
師父 曰
인간의 일상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게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하고 擧止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自己省察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 孚沈하면서 살아가는
범속한 日常人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자기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惰性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하게 처신을 하면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지겹고 답답해 숨막힐 일이지만 그래도 그렁저렁 헛눈을 팔면서 살아가고 있
다. 이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혹은 한강 인도교의 비어 꼭대기에 올라가 뉴스거리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되돌아 오고 만다.
자기의 인생을 처음 부터 다시 시작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별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불쑥 망우리를 찾아간 일이 있다.
짖궂은 성미에서가 아니라 성에 차지 않게 생각하는 그의 生을 죽음 쪽에서 照明해주
고 싶어서였다. 餘地가 없는 무덤들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망우리 !
과연 이동네에서는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고 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누워 있는 것
일까. 우뚝우뚝 차갑게 지켜 서 있는 그 碑石들만 아니라면 지극히 평온할 것 같았다.
죽어본 그들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만약 그들을 깊은 잠에서 불러 깨운다면 그들은 되찾은 生을 어떻게 살아갈까?
사형수에게는 일분 일초가 생명 그 자체로 실감된다고 한다.
그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
그래서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영탄이 역시 제주도 감옥에서 600번 노란명찰 김 병옥을 경험했다.
갑판장이었던 그는 파도가 몰아치는 선상위에서 선원들의 폭동과 맞써 싸우는 과정에
서 알수 없는 기운에 미쳐 선상용 낫으로 세명을 살해하고 말았다.
영탄이와 동갑이었던 그는 오늘만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영탄이 출소 후 몇년 후에 600번의 소식을....!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곧잘 다음날로 미루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
생명의 한 토막인 하루 하루를 소홀히 낭비하면서도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장엄한 落照 같은 것을 느낄것이다.
단조로운 듯한 반복 속에서 深化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상이 심화 없는 범속한 되풀이만이라면 두 자리 반으로 족한 \" 듣기 좋은
노래 \" 가 되고 말것이다.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生을 조명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
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심화를 위해서 !
데코님들 행복한 2005年입니다.
다시 시작 하십시오.
강건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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