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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 재단 홈페이지에 실린 김진희 회장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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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종태 댓글 0건 조회 667회 작성일 06-12-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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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장애인협회 김진희회장

당신이 한 순간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다면? 그것도 20대 후반의 꽃다운 나이 출근길에 일어난 일이라면? 콧노래를 부르며 직장을 향하던 당신에게 트럭이 중앙차선을 넘어와 돌진한 결과 2년 동안 병상에 누워 눈물을 흘리며 28차례의 수술을 받게된다면?


 
 아마 신의 존재와 신의 선한 의지, 세상의 공평함에 대해 회의하고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닫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2년간 자신을 추스린 끝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절단장애인협회 김진희 회장. 노숙자와 웨이트리스로 일하다 모델로 성공한 폴 매카트니의 부인 헤더 밀스가 23살 때 교통사고로 왼발을 잃은 뒤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되자 지뢰로 손발이 잘린 사람들을 위해 여기저기서 구한 의수족 5천개를 트럭에 싣고 찾아 갔듯이 그녀는 중고 의수족과 휠체어 등 500여 점을 모아 수리한 뒤 가난한 장애인에게 전달했다. 1999년에는 자신과 같이 한순간에 절단장애인이 된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 서로 격려하기위해 절단장애인 협회를 만들었다. 하나둘 모인 사람이 이제 9천명을 헤어린다.

이제는 외국 장애인 중 재활에 성공해 우뚝 선 사람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가로, 장애인 문제를 글로 쓰는 기고가로, 장애인 문제를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송인으로 변신한 김진희 회장을 만났다.
 

많이 바쁘실텐데 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KBS 제3 라디오 ‘함께하는 세상 만들기‘, CBS ‘함께사는 세상’ 등에서 리포터로 할동했습니다. 얼마 전 캄보디아를 가기전 까지는 KBS 제 2TV ‘사랑의 가족’에서 “김진희의 희망통신”이라는 프로를 맡아, 장애인계에서 일어나는 이슈나, 행사 등을 소개하는 전문리포터로 활동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방송과 강연을 하고 있지만 주된 일은 절단장애인들의 친목과 정보를 나누는 협회 회장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진희 회장을 보면 열정적으로 사시는 분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요즘 생활에 만족하시는지요?

사실 사고 전에는 장애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다치고 나니 장애에 대해, 장애인 차별에 대해, 또 장애인 인식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피부로 절감하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장애를 입어 더디긴 하지만,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어떻게 되세요?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 남동생, 이제는 다들 출가해서 부모님과 저만 있네요.

사고 전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의정부에서 대형 미술학원을 운영했습니다. 원생이 298명, 직원이 10명인 정말 요즘말로 돈도 많이 벌고 그야말로 잘 나가는 미녀 미술학원 원장이었어요.

 

▲ 7년째 하고 있는 보장구 나눔 운동

사고가 어떻게 났습니까?

1997년 3월 오늘 같이 화창한 아침이었습니다. 출근길에 5톤 트럭을 중앙선을 넘어서 저에게 돌진했습니다. 한 순간에 일어난 대형사고 였습니다. 왼쪽 다리가 잘려져 나가고, 왼쪽 팔은 뼈가 으스러져 15센치 이상 없어졌습니다. 얼굴도 심하게 다쳐 코와 입, 치아 모두 으스러지고 튀어 나오고 오른쪽 눈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때 당시 병원에서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며, 영안실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도 그때 그 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너무 고통스런 기억을 일깨워드려서 미안합니다. 많이 힘드셨지요?

솔직히 다치기 전에는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들었었습니다. 나름대로 능력도 있고 젊은 여자가 잘나간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치고 보니 많이 헤맸다고 할까요. '누구에게고 해를 끼친 적도 없고 나쁘게 하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람 중 왜 내가 불행을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이런 모습으로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자살 시도도 여러 번 시도했어요. 병간호를 맡으신 어머니께서 ‘너를 먼저 보내고 내가 어떻게 사느냐, 아마 네가 이렇게 된 것은 분명 네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앞으로 열과 성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고 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럼 어머니의 간곡한 애원이 계기가 된 것인가요?

또 하나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신문를 봤는데 에이미 멀린스라는 의족을 하고 달리는 육상 선수 겸 모델의 기사였습니다. 사진을 보니 다리가 훤하니 들어나는 짧은 검정색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모습에 매료됐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에게 연락을 해서 영국 도셋 병원이라는 곳에서 의족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1년여 동안 병원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실제 다리 모양과 피부색, 주름, 발톱 등 너무나 똑같은 의족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제게 맞는 의족을 만든다면 치마를 입을 수 있었고 하이힐도 신을 수 있기 때문에 다치기 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 밖으로 더 빨리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외국 여행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여행이라는게 특히 배낭여행이라는 것이 많이 걷는 건데 저처럼 의족을 착용한 사람도 할 수 있을 까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의족이기에 많이 힘들긴 했지만 배낭여행을 통해 외국의 장애인 시설이 눈에 많이 들어 오더라구요. 그리고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외국인사들의 책을 번역하셨는데 어떤 동기에서 시작하셨나요?

영국 병원에서 미모의 헤더밀스라는 여자사진을 접하면서 궁금증이 생겼어요. “저 여자는 누군데 여기에 사진이 걸렸나요?” 하고 물으니까 “이곳 병원 고객이고 혹 그녀의 삶이 궁금하면 자서전이 서점에 나와 있으니 보라”고 말하더군요. 며칠 뒤 영국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다보니 저에게 도움이 된 것처럼 교통사고를 당한 뒤 방황하는 10대들에게 읽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요즘 정력적으로 하고 계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는 6,25 전쟁과 월남전 파병으로 많은 절단 장애인들이 있지만 의수족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사고를 당할 때만 해도 너무 정보가 없었고요. 절단장애는 후천적 장애이다 보니 대부분이 갑자기 장애를 입으면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힘들어합니다. 재활하는 시간도 많이 늦어지고요. 그래서 이들에게 좀 더 빨리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주고 턱없이 부족한 의료보험 지원 등에 대한 제도적인 문제를 알리고 있어요. 무엇보다 절단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기위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홍보해서 절단장애인들이 하루빨리 사회에 복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입니다.

언제쯤 결혼을 계획하세요? 이상형은 어떤 사람입니까?

결혼요. 좋은 사람 있으면 언제든지 하려고 해요. 사람들은 제 눈이 높아서 결혼을 안 하는게 아니냐고 묻는데 그건 아니고요. 제가 하는 일에 NO하지 않고 같이 봉사도 하고 저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면 더 좋겠죠.

구상하고 계신 앞으로의 인생계획은 어떤 것 입니까?

두가지인데요. 첫째는 방송인으로 장애인 전문 토크쇼 MC를 해보는 꿈입니다. 그 이유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장애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허물없이 자연스럽게 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장애인으로서 이성과의 연예, 성, 결혼, 출산, 고부간의 갈등, 극복등. 책이나 인터넷에서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 삶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두 번째는 유명한 앙드레 김 선생님 패션쇼에 서보는 것입니다. 이유는 장애인도 얼마든지 아름다움을 표현 할 수 있고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면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다른 직업을 제시 할 수 있지 않을 까 싶어서요. 모델, 의상디자이너, 웨딩 플래너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직업을 장애인분들이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거든요. 청각장애인은 외모적으로는 괜찮잖아요. 그리고 절단장애인들은 본인들만 괜찮다면 의수나 의족을 들어내도 괜찮을 것 같고요.



 

그녀를 만났는데 먼저 드는 느낌은 너무나 밝고 순수하다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녀는 삶에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활기차다. 내 모든 것을 바치는, 올인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김진희씨에게서 그런 내음이 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 늘 주저앉을 것 같지만 어느틈엔가 조금씩 앞서 나가는 사람. 그녀를 만나면 어느 순간 내 삶도 밝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절단장애인들의 미래가, 그녀가 하는 일의 전망이 밝은 지 모른다.

만난 사람= 황경옥 푸르메재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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