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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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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1건 조회 10,490회 작성일 10-02-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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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정 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

한 쪽 다리 대신 든든한 세 딸을 얻은 여배우


우연정은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 세포가 뼈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쪽 다리를 절단했다.
이후 그녀가 겪은 결혼의 아픔과 예쁜 세 딸을 얻기까지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소설 같다.


한 발로 세상과 맞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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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인 우연정.
세상에 곡절 없는 삶이 있을까 싶지만 그녀만큼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이 서른에 무려 99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인기를 얻었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고,
 다리를 잃은 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딸 셋을 얻었다.
그리고 이혼의 아픔도 맛봤고, 사람에게 실망도 하고 상처도 받았다.

올해로 데뷔 35년째를 맞는 우연정의 모습이 궁금해
그녀가 세 딸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인천으로 향했다.
인터뷰 당일 날씨가 좋지 않아 집으로 가겠다는 기자를 그
녀는 한사코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만나자고 했다.
자신의 몸이 불편해 집에서는 손님 대접을 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그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양손에 목발을 짚고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목발을 짚고 걸어오는 모습에서 두 발로 걷는 사람 못지않게 힘이 느껴졌다.
여자 혼자 힘으로 세 딸을 키우기 위해 일찍부터 한 발로 세상과 부딪친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리에 앉을 때나 일어설 때 기자가 도움을 주려 해도 그녀는 “괜찮다”며 손을 젓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우연정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놨다.


한 쪽 다리를 잃고 시작된 행복과 불행
전라북도 전주가 고향인 우연정은 아버지가 전주 도지사까지 지낸 만석지기 집안의 둘째 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 3학년 때인 지난 1971년,
우연히 노진섭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사랑을 빌립시다’로 데뷔했다.
 이후 제11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제10회 청룡영화상 신인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10년이 못 되는 기간 동안 무려 99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영화배우로서도 인기를 얻은
그녀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서른을 목전에 둔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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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힘으로 세 딸을 키우기 위해 우연정은 일찍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 벽에는 젊은 시절 영화배우로 활동했을 때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별로 통증은 못 느꼈는데, 오른쪽 다리가 약간 부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바로 병원에 갔는데 암이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괜찮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었죠.
그런데 제가 너무 놀랄까봐 가족들과 함께 거짓말을 했더라구요.
결국 세 번의 수술 끝에 오른쪽 다리를 뽑게 됐어요.”

그녀의 굴곡진 인생살이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우연정에게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인 사람이 있었다.
대학 친구 소개로 만난 민형준씨는 그녀가 암 선고를 받자
그녀보다 더 괴로워하다 청혼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한 일이에요.
3차 수술도 0.01%의 희망을 가지고 시도한 거였죠.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미리 제가 죽을 때 입을 옷도 준비했죠.
 그런데 남편이 청혼을 하더라구요. 어떡해요.
나는 곧 죽거나 산다 해도 한쪽 다리가 없을 텐데, 당연히 거절했죠.
 그런데 그 사람이 진심을 다해 계속해서 내게 청혼을 했어요.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민형준씨의 끈질긴 설득 끝에 우연정은 결국 3차 수술 하루 전날,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후 자신의 다리가 되어준
 남편과 인자한 시댁 식구들의 도움으로 큰딸 민들레, 둘째 민나리,
셋째 민비까지 얻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시어머니나 시댁 식구 모두 인자하고 좋은 분들이었어요.
다리 한 쪽이 없는 며느리에게 ‘형준이가 어려서 다리가 아팠는데, 다 너를 만나려고 했나 보다.
 네가 형준이 몫을 지고 살게 됐구나’라며 결혼을 허락하셨어요.
 또 시누이들도 제가 딸 셋을 낳을 때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간병을 도맡았어요.
 아마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요.

남편과 이혼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도 친부모만큼 저를 아껴주신 시어머니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동기간보다 더 살가웠던 시누이와 헤어지는 거였어요.”

행복한 시간에 다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우연정은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길어야 3개월 산다고 했던 여자가 애를 셋씩이나 낳고 매일 이것저것 요구하는데,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어요.
하지만 당시 저로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남편은 신앙 같은 존재였죠.
그런 남편이 외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과 분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았죠.”
그리고 한참 후 우연정은 결혼을 한 번 더 했지만 길게 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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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사진을 보면 그 푸른 느낌이 좋아요”
우연정은 가끔 지난 시절 사진첩을 꺼내볼 때마다 푸른 젊음을 느낀다.
두 다리가 있던 시절, 그리고 배우로서 누구 못지않게 아름다움을 뽐내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진첩을 보면 “그때 참 행복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요즘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을 빼닮은 딸을 볼 때마다
자신의 낡은 사진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아빠 없는 자식이란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아이들을 엄하게 키웠어요.
 어떻게 보면 삐뚤어지게 자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다행히 아이들이
제 부족한 부분을 배우지 않아 고마워요.
딸들이 ‘엄마는 발이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데,
그 말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그런 마음 씀씀이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 큰 의지가 돼요.”

우연정이 신는 신발은 모두 세 딸이 앞 다퉈 사준 것이란다.
“엄마 것이라면 뭐든지 좋은 것, 예쁜 것만 골라와요.
 그런데 저는 한 짝밖에 필요 없어 너무 아까워요.
허투루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내 남은 신발을
 누군가 소중하게 쓸 수 있다면 주고 싶어요.”

부잣집 둘째 딸에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 우연정은 말한다.
다리를 잃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교만스럽게 살았을 것이라고.

“어느 날 친정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시더라구요.
‘너는 다리를 잃고 나서 더 인간답다’고.
 어렸을 때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면 ‘저 나이가 되면 무슨 낙으로 사나?’ 싶었어요.
 돌이켜보면 착각이었고 젊은 날의 교만이었어요.”

우연정은 다리를 잃은 아픔도 모두 소중한 기억이라고 말한다.
목발에 의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결코 부끄럽지 않으며,
 두 다리가 아닌 세 다리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 더 소중하다고.

“서른 살에 한 쪽 다리를 잃었어요. 한창 예쁜 나이였고, 꿈도 많았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죠.
완전히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 체념했다가도 세 발로 서 있는 내 자신을 거울로 볼 때면
다시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았어요.
 그렇게 원망, 분노, 체념의 시간을 몇 번씩 되풀이한 덕분에
지금은 많이 겸손해진 것 같아요.”

우연정은 “살면서 필요하지 않은 것도 후에 생각하면 다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장애는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사람답게 만들어준 선물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우연정.
그녀가 땅을 짚고 있는 발끝에서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글 / 김성욱 기자 사진 / 원상희

댓글목록

김종준님의 댓글

김종준 작성일

심연같은 인생이 느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