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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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1건 조회 10,891회 작성일 10-04-05 09:26본문
풀코스 100회 완주, 보스톤마라톤, 베를린마라톤, 뉴욕마라톤, 런던마라톤 등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에 참가 완주, 울트라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2003년 한반도횡단 308㎞ , 2004년 한반도종단 537km, 2005년 한반도 종단 622㎞ 완주….
2005년 춘천마라톤대회 4위, 2006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5위, 2008년 일본 카가와마루가메 국제하프마라톤 대회 3위 입상 등 성적으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마라토너 김영갑씨.
이러한 기록을 쌓아가고 있는 마라토너 김영갑씨가 양 손 없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일반인들은 놀라고 만다.
△아픔의 시작
김영갑(43)씨는 지난 1967년 의성군 안평면 금곡마을에서 4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의성공고를 졸업, 해병 청룡부대에 자원입대, 누구보다 건강한 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1994년 4월 군복무를 마치고 첫 직장으로 8월 구미공단에 있는 글라스 제조회사 변전실에 근무하며 공장내 전기설비 보수 일을 맡았다.
가슴에 새겨진 그날 1998년 1월 20일 오전 8시께. 고압케이블 작업 도중 순간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했다.
고압에 감전이 됐을 때 뭔가가 왼손을 당기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잠시 후 깨어나 보니, 양 손 모두 새까맣게 타 있었고 오른손보다 왼손의 증상이 심했다. 양쪽 무릎에도 적잖은 상처가 보였다.
구급차로 서울에 있는 화상 전문 병원으로 가는 도중 가는 길에 보슬비가 얼마나 슬프게 내리는지. "이게 꿈이라면… 꿈이라면…" 간절히 바랬건만 꿈이 아니었다.
△투병생활
화상 전문 병원인 서울 한일병원에 도착을 하자 담당의사는 경과를 두고 봐야 알겠지만 양손과 왼쪽다리를 절단해야 할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부모님은 침상에 누워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을 보시더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김씨는 돌아누워 밤새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고 한다.
입원한지 2~3일 정도 지나자 죽은 피부가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사고의 고통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몇주 동안은 통증이 심해 진통제로 견디면서 통증이 심할 때는 손을 빨리 잘라 주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병실에서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들 서로가 위로해 주고 잘 지내게 되면서 병원생활에 익숙해 갈 즈음 김씨도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마음이 안정되자 수술을 시작, 4번의 수술 끝에 양손 모두를 하늘 나라로 보내고 입원 5개월 만에 퇴원을 하게 됐다.
퇴원해 집으로 가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아! 나의 양손…. 서울에서 고향집까지 말 한마디 없이 내려왔다고 한다.
△달리기 시작
처음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부끄러워 방에만 있었다. 시골집에 두 달 정도 있다가 몸을 추스린 후 구미의 누나 집으로 내려 오게 됐다.
거의 매일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고 체중도 늘어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 어느 날 조카를 데리고 뒷산을 걸으며 운동을 하러 갔다. 며칠 동안은 걸어올라 가다가 언제부터인가 천천히 달려 보았다.
얼굴도 좋아지고 체중도 조금씩 줄어들며 운동에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1999년 9월, 지금의 상모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가 3바퀴를 달리자 숨이 차 더 이상 달리지 못했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운동량이 늘어가고 있었다.
△마라톤
등산화를 신고 학교 운동장 달리기로 육 개월쯤 지났을 때 어느 듯 달리기에 자신이 생겼다.
어느 날 운동장에 나가기전 이리저리 인터넷으로 마라톤동호회를 검색하다가 구미에도 마라톤동호회가 있는 걸 알고 2001년 구미사랑 마라톤클럽에 가입, 회원들과 함께 달리게 됐다.
처음에는 낯설고 서먹서먹 했지만 두 번, 세 번 클럽모임에 나가자 땀으로 뭉친 회원들이라서 그런지 유대감이 빨리 생겼다.
특히 운동을 할때는 없는 손을 대신해 운동화 끈도 매어주고 달리는 중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달리면서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해 5월에 처음으로 대전에서 열린 대덕밸리하프마라톤대회 출발선에 서서 '혹시나 꼴찌를 하지 않을까. 아니 완주를 할 수 있을 까' 걱정을 하면서 뒤에서 천천히 달려 1시간 52분 만에 완주했다. 완주의 기분이 얼마나 좋았던 지. 대회 참가를 하고 나서부터 점점 재미를 붙이게 됐다.
이어 2002년 3월 서울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3시간내 완주해 풀코스 도전 6번만에 sub-3(풀코스마라톤을 3시간이내로 달리는 주자)를 달성,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각종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완주 횟 수를 늘려가던 도중 2006년 서울 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2시간 34분대를 기록해 개인최고 기록까지 작성하게 됐다.
김영갑 씨는 "땀 흘리며 달리기 할 때는 장애인 인 것을 모르고 지내며 달리기는 장애를 비장애로 이어주는 하나의 좋은 매개체인 것 같다"고 마라톤을 자랑했다.
이어 김씨는 "주어진 현실에 비관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보면 거기에 만족과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서 "양손 없어도 따뜻한 사람들과 두 발로 할 수 있는 달리기가 있기에 세상은 살만 합니다"고 말했다. 또 "많은 장애우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앞으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올해는 2시간 20분내의 완주 기록을 수립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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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진님의 댓글
신명진 작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