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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은 열정이죠" 의족배드민터 최혁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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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501회 작성일 12-12-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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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준 사장(41)은 의족 배드민터다. 전 아이스슬레지 하키(썰매에 앉아서 하는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 다녀왔고 6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다. 포지션은 골키퍼, 거미손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10평 남짓한 과메기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고, 마상클럽에서 운동한다. 지금은 C조. 최 사장은 매주 월, 수, 금, 토, 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고양시 마상체육관에 실력을 쌓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 최 사장의 과메기 전문점을 찾아 황금 빛 과메기를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

만능 스포츠맨, 밴쿠버올림픽도 다녀왔죠

원래 운동을 다 좋아했어요. 어릴 때부터 아주 많이. 초등학교 때는 축구를 했고, 중학교 때는 유도를 했고, 고등학교 때는 배드민턴도 하고 택견도 배웠어요. 배드민턴 선수는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때 학교대표로 경북도민체전에 나가서 은메달도 땄어요. 그 다음해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반부로 나가서 금메달을 땄고요. 당시에 김천시청 배드민턴 선수들이 대회를 안 나왔거든요.

재수가 좋았죠. 하하하. 사고가 난 후 2000년도에 취미로 휠체어 농구를 하다가 2003년도부터는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2006년에 강원도청에 실업팀이 생겨서 선수생활을 했죠. 그 후로 동계체전에서 매번 우승을 했고, 국가대표로 활동하다가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 다녀와서 그 다음해 2월 은퇴했습니다. 아이스슬레지하키가 동계스포츠니까 하계 때는 장애인육상 선수로도 활동했는데요. 창, 원반, 포환던지기를 했는데, 2006년부터 2011년까지 6년간 전국체전 3관왕을 했어요. 올해는 어깨를 다쳐서 창하고 포환던지기만 나갔고, 은메달을 두 개 땄어요. 그리고 지금은 배드민턴을 열심히 하고 있고요. 지난해부터 아예 작정하고 하고 있답니다.

의족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1997년도 1월에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왼쪽 허벅지 부위를 자르게 됐어요. 무릎 뼈하고 발목뼈가 완전히 날아가서 어쩔 수 없이 잘랐습니다. 당시 다리를 자를 때, 마치 예상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을 했어요. 오히려 남들한테 더 내놓고 다녔고요. 더 빨리 적응하고 싶었거든요. 이런 거 때문에 숨어서 살고 싶지 않았고, 전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면서 남들에게 다 보여줬습니다. 그러니까 더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오히려 가족들하고 주위에서 저보다 더 많이 울고 슬퍼했어요. 제가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곤 했었죠. 지금은 다 나았고 병원도 가지 않아요. 가족들도 다들 좋아하고요.

제가 당당하니까.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운동을 예전만큼 못한다는 거, 예전처럼 못 뛰어다닌다는 게 조금 아쉽더라고요. 그때부터 의족을 사용했어요. 그런데 이 의족이 돈이 많이 듭니다. 제가 사용하는 의족은 보통 수명이 10-15년 정도인데 배드민턴을 하다보니까 3년 밖에 못써요. 의족 가격이 3천만 원 이상이거든요. 돈이 정말 많이 들어요. 제가 워낙에 활동적이라 저렴한 것보다는 많이 다닐 수 있는 것, 더 튼튼하고 비싼 걸로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의족의 수명은 더 짧아졌어요. 부속품이 부러지더라고요. AS를 보내기고 하고 그래요. 얼마 전에도 부속 하나를 교체했는데 450만원이나 나가더라고요.

아내가 알면 안 되는데. 아내는 모르고 있거든요. 하하하. 그래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건데 돈이 들어가게 돼 있잖아요.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사실 지나고 나면 조금 아깝긴 해요. 하하하하.

배드민턴은 내 운명

배드민턴을 하면 만족도가 커요. 정말 힘들 때, 그 육체적으로 힘든 걸 이겨내고 나면 뿌듯해져요. 사고로 다리를 잃고 난 후로 배드민턴은 못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장애인복지센터에서 헬스를 하다가 우연히 배드민턴을 하는 걸 보게 됐고, 고등학교 때 생각도 나고 그래서 잠깐 해봤는데 이게 잘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로 배드민턴을 계속하게 됐어요.
 
솔직히 배드민턴은 힘들어요. 발로 하는 운동이라서. 저는 스텝도 느리고 보폭도 짧고 하니까요. 근데 이게 혼자서 하는 운동이 아니고 네 명이서 같이 하잖아요. 맞춰서 하다보니까 되더라고요. 얼마나 승부욕을 자극하는지 몰라요. 평소 지고 못사는 성격이라서 열심히 안할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도 일주일에 세 번씩 꾸준히 레슨을 받습니다. 레슨을 안 받으면 안 되겠던데요. 레슨을 안 받는 순간, 실력은 정지되거나 마이너스가 됩니다. 하하하. 운동할 때는 반바지를 입어요.

주위의 시선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요. 여름에는 의족통에 땀이 나서 진무르고 힘들기도 한데 그것도 오래돼서 개의치 않아요. 신경도 안 쓰고 있어요. 특기는 백핸드예요. 백클리어, 백드롭, 드라이브가 좋은 것 같아요. 롱서브 리시브가 약점이고요. 제가 순발력이 조금 떨어지는데, 대회에 나가면 가끔 일부러 롱서브를 넣는 상대들이 있어요. 어차피 스포츠는 이기려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괜찮은데, 그럴 때 주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더 싫어하죠.

그거 외에는 별로 어려운 거 없어요. 선수가 아니라면 저를 놀리기 힘들걸요. 웬만한 사람들은 제가 데리고 놀죠. 하하하.

절대 자살하지 마세요

새끼손가락 하나 잘린 사람이 자살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발목 절단된 사람이 병원에서 자살소동을 벌이는 걸 직접 본적도 있고요. 사람이라는게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다쳐서 장애를 입었다고 사람이 아닌 게 아닙니다.

뭐든지 한번 해보고 부딪혀보면 적응할 수 있어요. 많은 장애인들이 자기들끼리는 굉장히 당당한데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제 주위 사람들은 제가 많이 데리고 나갔어요. 운동 끝나고 회식할 때 나이트클럽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그랬어요. 그리고 저도 배드민턴이 안 될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해보니까 되더라고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마시고, 스스로 먼저 담을 쌓지 마세요. ‘저거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저거 해봐야지’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가족, 그리고 꿈

많은 장애인들이 결혼에는 두 개의 큰 산이 있다고 말해요. 첫 번째는 여자를 만나는 일이고, 두 번째는 결혼승낙을 받는 일이죠. 저는 연애 결혼했어요. 모임자리에 갔다가 만났어요. 운 좋게 집사람이 한눈에 반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경상도 사람이 화끈하잖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앞장서고, 자신감 있는 그런 면들 때문에 좋아했던 거 같아요.
 
2003년도에 결혼해서 일곱 살짜리 아들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아내와 나이도 동갑이거든요. 친구처럼 계속 행복하게, 여행도 좋아하니까 우리나라 구석구석 찾아다니면서, 나이 먹어도 같이 손잡고 다닐 수 있는 그런 남편이고 싶어요. 아들 녀석의 눈에는 공부 대신에 행복한 웃음을 심어주고 싶고요. 우리나라 아이들이 지쳐있고 피곤해 보이잖아요. 항상 밝게 웃으면서 자라길 바라고 있어요. 물론, 사업도 성공해야죠. 일도 계속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 전국체전을 다녀와서 육상 관계자로부터 선수생활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았거든요. 제대로 몸 관리하면서 배우면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그래서 그것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제가 창, 포환, 원반던지기 한국신기록을 다가지고 있거든요. 곧 인천아시안게임도 열리고 그러니까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따로 지도를 받아본 적이 없고 오로지 힘만 가지고 했거든요. 창던지기 같은 경우에는 기술만 제대로 배워도 10미터는 더 던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세계기록과의 차이도 얼마 안난다며 올림픽도 가능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솔직히 운동이 정말 힘들잖아요. 그것도 개인운동이라 더 힘들 거예요. 친구들은 감독할 나이에 무슨 선수냐며 뭐라고 그러더라고요. 하하하. 그런데 솔직히 욕심이 나기도 하고, 고민 중입니다. 제 삶에, 제 업에 크게 지장을 안주는 범위 내에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기도 해요.

심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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