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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로 변신, 쇼핑몰 ‘기사미닷컴’의 김유태 회원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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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7건 조회 9,918회 작성일 15-03-1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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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위축될수록 강렬한 옷을 입으세요”

암환자에서 사업가로 변신, 쇼핑몰 ‘기사미닷컴’ 김유태 대표

‘옷이 날개’라는 말을 김유태 대표는 체험으로 알았다.
주눅이 들 때 강렬한 옷을 입으니 기운이 났다.
꼼짝없이 누워 있던 시절, 그에게 힘이 되었던 록밴드의 음악과 격투기 경기는 그대로 사업 아이템이 됐다.

사진제공 : 기사미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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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패션 쇼핑몰 기사미닷컴(www.gisami.com)은 제2의 창업을 준비한다. 김유태 대표는 주로 온라인으로 운영하던 몰을 이제 오프라인 매장과 병행하려고 한다. 숙원이었는데 올해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완치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육종암(뼈나 연골, 지방, 신경, 혈관 등 결합조직에서 발생하는 암)은 다른 암에 비해 예후가 좋지 않아서 10년은 지켜봐야 해요. 지난해가 치료 완료한 지 딱 10년이 되던 해였어요. 10년이 지나면 더 이상 재발하지 않는다고 봐도 되거든요. 지금까지는 매년 검사를 받았는데, 이제 2년에 한 번씩만 오라고 하더군요.”

10년 전만 해도 김유태 대표에게 창업은 남의 일이었다. 대학교에서는 화학공학을 전공했고, 졸업과 함께 대기업에 입사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다. 둘째 아이 돌 즈음, 암 판정을 받았다. 암세포가 시작된 한쪽 발은 절단해야 했다. 그보다 두려운 건 전이와 재발이었다. 폐로 전이된 암세포는 쉬 잡히지 않았다. 두 번 수술, 두 번 재발, 그사이 직장을 잃었다.

“장애는 큰 충격이 아니었어요. 불편했을 뿐이죠. 암이 재발할 것에 대한 공포가 더 컸어요.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도 섣불리 시작을 못 했거든요.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올지 모르니까요. 매장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는데, 이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된 거죠.”

의족을 하기 전까지는 누워서만 지냈다. 그의 귀와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하나는 록밴드의 음악이었고, 또 하나는 종합격투기 경기였다. 마음이 힘들다 보니 강렬한 사운드와 치열한 경기가 와 닿았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록 음악을 잘 몰랐어요. 이쪽 일을 하게 될 줄도 몰랐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어요. 어디를 못 가니까 강한 음악, 강한 프로그램을 보게 됐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업구상을 하게 됐고요. 그때가 마지막으로 폐를 수술한 뒤였을 거예요.”

마지막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바꾼다. 좋을 유(愉)에 클 태(太), 살아난다면 ‘김유태로 살아야지’ 생각했다. 다행히 그에게 다시 한 번 삶이 주어졌고, 그의 본명이었던 ‘김기삼’은 ‘기사미닷컴’으로 재탄생했다.


기분 좋은 사람들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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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이 김기삼이에요. 세 번째 수술을 할 때는 확률이 반반이었어요. 그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름을 한 번 바꿔봤어요. 개명신청을 해서 이름을 바꿨고, 대신 쇼핑몰 이름을 ‘기사미’라고 지었죠. ‘기분 좋은 사람들의 미소’라는 뜻은 나중에 붙였고요.”

메탈 팔찌, 타투 티셔츠, 해골 목걸이, 바이크 가방… 등 강렬한 아이템과 ‘기사미’라는 귀여운 이름의 조화가 의아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다. ‘기분 좋은 사람들의 미소’도 그의 바람을 담은 뜻이다. 사실 한국은 타투 패션에 대한 오해가 있다. 그 오해를 푸는 것도 기사미의 숙제다.

“마음이 힘든 분들은 자기를 드러내는 옷을 입으면 치유가 돼요. 자꾸 움츠러들게 되거든요. 근데 강렬한 옷을 입고 ‘나는 강하다’는 느낌을 가지면 힘이 나요. 미국에서도 블랙마켓이라고 하는데, 흑인이나 멕시칸이 이민 생활이 힘들 때 입었던 옷이에요. 옷이나 몸에 타투를 그려 심리적인 위안을 갖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조폭(?)들이 입으면서 선입견이 생겼는데 실은 하나의 문화예요.”

기사미는 미국 ‘엑스비어(Xzavier)’ 제품을 수입한다. 미국의 한인 교포가 운영하는 브랜드인데 김유태 대표의 설득으로 한국에도 납품하게 됐다.

“처음에는 드럼스틱을 오픈마켓에서 파는 걸로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록밴드와 인연을 맺었어요. YB밴드 드러머와 알게 된 것도 그때였어요. 공연을 보러 다니다 보니까 의상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미국의 엑스비어 브랜드를 알게 된 것도 그때쯤이고요.”

“저희 창업 시기랑 엑스비어가 미국에서 문을 연 시기가 비슷해요. 나이도 저랑 동갑이고요. 처음 소개된 건 KBS 〈지구촌 한국인〉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제가 무작정 방송국으로 전화해서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죠. 처음에는 몇 박스로 시작했어요. 서로 신뢰가 쌓이면서 거래량이 늘었죠. 결정적으로 YB 밴드가 공연장에서 입으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죠.”

방송국으로 전화를 건 것도, 현지 대표를 설득한 것도, 록밴드를 찾아가 옷을 건넨 것도 모두 김유태 대표다. 회사를 다닐 땐 몰랐는데, 사업을 시작해보니 저절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발로 뛰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철칙으로 지키는 사업 철학이 있다. 기사미닷컴에 들어가보면 의류나 소품 가격이 대부분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셔츠나 티셔츠는 거의 5만원 대다. 사업이 번창하면 가격은 더 떨어질 것이란 게 그의 말이다.


딱 1년만 버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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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미닷컴’의 옷을 입은 뮤지션들. 왼쪽부터 디아블로, 문희준, 임재범.
“폭리를 취하는 게 당장은 좋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욕먹게 되어 있어요. 부담 없는 가격으로 책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업체가 커지면 가격은 점점 내려가야죠. ‘기분 좋은 사람들의 미소’가 되려면 욕먹을 짓을 하면 안 돼요. 무엇보다 기사미 제품을 보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새로운 취미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패션 쪽이 많지만 앞으로는 더 다양한 소품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되게 하려고 해요. 특히 힘든 시기에 있는 분들에게 저희 기사미가 그런 마음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탈출구가 되길 바라고요.”

김유태 대표에게 록(rock)이, 이종격투기가 탈출구가 되었듯이 누군가에게는 기사미가 그런 통로가 되길 바란다. 누군가 지금 바닥을 치고 있다면, 혹시 자신처럼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됐다면 딱 1년만 버텨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장애는 열심히 살다 보면 잊어버려요. 처음 1~2년은 정말 힘들어요. 그 기간만 잘 넘기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저는 무릎이 있는 장애라서 없는 분들에 비하면 낫죠. 절단장애인 모임이 있는데요. 거기 가보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만약 지금 힘든 분이 있다면 딱 1년만 기다려달라고 하고 싶어요. 저는 장애인이 되고 나서 장애인창업지원센터를 찾아갔어요. 그곳에 입주 신청을 해서 첫 사무실을 시작했죠.”

포토샵을 배우고, 홈페이지 관리법을 익혔다. 사업을 하려면 기본적인 기술은 배워두는 게 좋다. 그러다 보면 잊고 지내던 꿈도 찾게 된다. 처음에 드럼 스틱을 수입하면서 드럼 학원에도 다녔다. 드럼을 배우다 보니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확실히 실제로 쳐보니까 느낌을 알겠더라고요. 언젠가는 직장인 밴드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일단 올해는 오프라인 매장에 집중해야 해서 힘들겠지만요(웃음).”
 
 

댓글목록

김동원님의 댓글

김동원 작성일

말한마디에 천냥빛을 갚는다는 말이 떠오르네요.무심코 참석한 모임에서 위안이되고 목표가생기고

김동원님의 댓글

김동원 작성일

한줄 글.단어로 협회가 함께한다는 것이 힘이될것 같네요. 하시는 사업 대박 나시길..

김미정님의 댓글

김미정 작성일

보기 너무 좋습니다.저도 모임을 통해 정보를 알게되었고 지금 지방에 내려가 장애인들을 위한

김미정님의 댓글

김미정 작성일

삶을 살고 있답니다. 더 열심히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순간듭니다. 사업 번창 하시길~~

김유태님의 댓글

김유태 작성일

오랜만에 협회홈페이지 방문했는데..... 관리자님께서 어떻게 보시고올리셨네요..쑥스럽습니다

김유태님의 댓글

김유태 작성일

회사일한다고 협회모임에 전혀신경못써서...죄송합니다.

김유태님의 댓글

김유태 작성일

김동원님,김미정님 응원감사합니다....